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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정각 내에는 모두 6폭의 영정이 걸려 있는데
정면에 주자와 안향이, 오른쪽에 주세붕과 이덕형이, 왼쪽에 이원익과 미수 허목의 영정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.
문성공(文成公) 영정(影幀)은 고려 충렬왕 때(1275~1308)문성공께서 왕을 따라 원(元)나라에 가서
원나라 학관(學官)들과 교유(交遊)할 때 학관이 세폭을 그려 두폭은 자기들이 갖고 한 폭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.
문성공께서 돌아가신 후 문묘(文廟)에 봉안(奉安)하였다가 그 후에 종택(宗宅)에 이안(移安)하였었는데
소수서원을 창건한 후 서원에 이안하여 현재에 이르렀다.
도형(圖形)과 색채(色彩)가 특수하고 우리나라 현조 회화 가운데 사성연대(寫成年代)가 가장 오래되어
국가보존문화재로서 1967년 6월 <국보 제111호>로 지정되었다.
이 외에 지성대성(至聖大成) 문선왕(文宣王) 전좌도(殿坐圖)와 주세붕선생의 영정이 보물로 지정 보존되고있다.
문선왕 전좌도는 문성공께서 충렬왕 때 원나라에 다녀오시며 함께 가져온 것으로
문성공 재세시(在世時)에는 본댁 별관에 봉안하고
조석으로 우러러 보시던 문선왕 즉 공자(孔子)의 영정이다.
당시 같이 봉안되었면 주자(朱子)의 진상(眞像)은 소재를 알 수 없다.
문선왕 전좌도에는 공자를 중점으로 좌우중단(中段)에 십철(十哲)이 나누어 앉아 있고
하단(下段)에는 칠십제자상(七十弟子像)이 열좌(列座)하여 있다.
이 도형에 나타난 청정(淸淨)한 기상(氣像)과 사성선(寫成線)이
한결같이 섬세한 사선(絲線) 으로 정묘하게 그려져 있다.
주세붕선생의 영정은 범같은 기상으로 당대의 영걸(英傑)로 관하를 호령하던 행정인으로
정명치세(正明治世)의 업적을 상상할 수 있는 기품(氣稟)이 넘쳐 흐르고 있다.
문성공을 성사(聖師)로 우러러 사모하여 백운동서원을 세우고
후학들에게 회헌선생의 창명교학(倡明敎學)의 정신을 닦게 한 경앙심(景仰心)이 지극한 유학자였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