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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조는 안자미(安子美), 고려 희종조에 흥위위(興威衛) 보승별장(保勝別將)을 지냈고,
뒤에 문성공(文成公) 안향(安珦)의 귀현(貴顯)으로 인하여 신호위(神虎衛) 상호군(上護軍)에 추봉되셨다.
시조공(始祖公) 이전의 상계(上系)는 알 수도 없으며
시조 이래, 후손들이 그곳 순흥(順興)에서 세거하였기에 관향(貫鄕)으로 삼은 것이다.
그런데 시조 휘 자미(子美)에게는 아들 3형제가 있어
큰 아들 휘 영유(永儒)의 후손들을 1파로, 둘째 아들 휘 영린(永麟)의 후손들을 2파로,
셋째 아들 휘 영화(永和)의 후손들을 3파로 구분하였다.
그리고 각파에는 명현(名賢)들이 있어 1파는 4세인 문성공(文成公) 휘 안향(安珦)이,
2파는 5세인 문의공(文懿公) 휘 문개(文凱)가 있으며, 3파는 6세 문정공(文貞公) 휘 축(軸)이 있다.
시조 상호군의 연대에 대하여 일부 문헌에는
남송순희(南宋淳熙) 9년 즉 고려 명종(明宗)12년(1182)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.
우리는 문중에 전해오는 족보와 회헌실기(晦軒實記)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.
이것에 의하면 위에 말한 벼슬을 하고 추봉을 받은 일이 있고,
또 큰 아드님이신 추밀원부사(樞密院副使) 휘 영유(永儒)께서 신종(神宗) 4년 신유(1201)생으로 되어있다.
또 3세 태사공(太師公) 휘 부(孚)께서는 1220년에
3파 5세 밀직제학공(密直提學公) 휘 석(碩)께서는 1260~1267년에 탄생하신 것으로 추측되니
시조공께서는 의종(毅宗) 24년 경인(1170)부터 명종(明宗) 10년 경자(1180)사이에 탄생하신 것으로 추정된다.